선암사 대웅전 옆 홍매화
정월 보름달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
매향을 담아 고이 올리니 부처님 지그시 바라보시고
무량심無量心으로 보살은 백팔배, 엎드릴 때마다
등 너머로 풍경이 법당을 엿본다
쳐진 올벚꽃 봉오리 기지개를 켜고
대각암 가는 산길 아기 손 같은
머위 잎이 반겨준다
당간지주 같은 편백들 사천왕처럼 굳게 서있고
파르르 숲을 깨치고 날아 오른 까치가
앞서 간다
중생들 고통을 보듬느라
법당에도 드시지 않고 얼굴은 모래알처럼 거칠어지고
옷은 비바람에 찢겨진 자리 이끼로 꿰매 입고
무량겁無量劫으로 서 계신
마애불 앞에서
우바새優婆塞도 무심해진다
그림자를 만들지도 못한 담은 흔적만 남겨놓고
문은 열면 골다공증 환자처럼 푹 쓰러질 것 같다
흔적만 남은 담 선을 지나갈 것인지
무너질 것 같은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야 할 지 망설이며,
황촛대 같은 산수유 두 그루
합장하듯 서있다
불어오는 잔잔한 바람이 등을 민다